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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즈코쿠요우 

의정

 

 

 

새벽 다섯 시의 법당은 에어컨을 튼 방보다 훨씬 시원했다. 리쿠는 떡두꺼비를 닮은 보살상 앞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았다. 극락왕생 같은 거창한 뜻이 있어서는 아니었다. 마룻바닥의 한기가 좋아 꾸역꾸역 몸을 일으킨 결과가 고작 여기였다.

 

"미리 좀 해둘걸.“

 

텅 빈 법당에서 리쿠가 툴툴거렸다. 주지 스님이 오늘까지 끝내라며 던져준 위패만 마흔 개가 넘었다. 오늘도 잠은 학교에서나 자게 생겼다. 리쿠는 벼루에 물을 붓고 먹을 갈기 시작했다. 차가운 마룻바닥의 한기가 엉덩이를 타고 올라왔다. 일찍 일어나는 건 죽을 맛이지만 막상 깨고 나면 하루가 빳빳하게 펴지는 기분이 들어 나쁘지 않았다.

 

오늘따라 적어야 할 이름들은 죄다 획이 많았다. 다 살지도 못하고 간 사람들이 이름은 왜 이렇게 길게 지어서 사람을 고생시키는 걸까. 이름 획수 따위로 삶과 죽음이 정해지는 건 아니지만, 절밥 먹고 살다 보면 이런 사소한 것에도 괜히 의미를 두게 된다. 불교에선 모든 것을 깨닫고 해탈하면 부처가 되어 다시는 생을 반복하지 않는다고 한다. 리쿠는 제 이번 생이 몇 번째인지는 몰라도 분명 처음은 아닐 거라 생각했다. 세는 나이로 여섯 살, 그 어린 시절의 기억이 유독 선명한 탓이었다. 비 오는 날 우산을 들고 아침이 올 때까지 절 문 앞에 서 있던 풍경. 삶의 어떤 장면들은 박제된 것처럼 잊히지 않는다.

 

보통 사찰은 주지 자리를 아들에게 물려주곤 한다. 하지만 청공사 주지 스님의 아들은 성인이 되자마자 집을 나가버렸다고 했다. 리쿠가 이 절 앞에 나타난 건 그로부터 일 년 뒤였다. 앞서 말했듯 무언가를 믿는 사람들은 아주 사소한 우연조차 운명으로 포장하기 마련이다. 주지 스님은 이 모든 게 하늘의 뜻이라며 리쿠를 집 나간 아들의 빈자리에 끼워 넣었다. 리쿠는 붓 끝을 가다듬으며 생각했다. 대타면 어떻고 하늘의 뜻이면 또 어떤가. 일단은 이 마흔 개의 이름부터 해치우는 게 먼저였다.

 

스물세 번째 위패가 완성됐을 때, 리쿠의 손목시계는 이미 여덟 시를 향하고 있었다. 집중이 풀리자마자 오래 눌려 있던 왼쪽 다리에서 쥐가 일었다. 리쿠는 당황하지 않고 골반에 힘을 준 채 왼쪽 발가락을 까닥였다. 역시 효과가 있었다. 절 백팔 번을 예사로 넘기는 리쿠에게 이 정도쯤은 일도 아니었다. 리쿠는 완성된 위패와 남은 것들을 바구니에 나누어 담고 주섬주섬 일어났다. 쥐가 풀린 지 얼마 되지 않아 나무 바닥을 딛는 발바닥의 감각이 묘하게 들떠 있었다.

 

법당 문을 열고 나오자 치넨이 멀리서부터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치넨은 리쿠와 또래인 동자승이었다. 사실 체구가 비슷해 다들 또래려니 짐작할 뿐, 청공사의 누구도 치넨의 제대로 된 나이를 알지 못했다. 손에 쥔 검은 비닐봉지 틈으로 시금치 줄기가 삐죽하게 솟아 있었다. 오늘 식단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전부 시금치 비빔밥으로 통일인 모양이었다.

 

“리쿠! 아침 먹고 가!”

 

들려오는 외침에 리쿠는 대답 대신 손만 대충 휘저었다. 너나 많이 먹으라는 뜻이었다. 리쿠는 학교 매점에 진열된 야키소바 빵과 딸기 밀크 샌드를 떠올리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낡은 고무신을 휙 벗어 던지고는 신발장에서 나이키 맥스 95를 꺼냈다. 출시되자마자 어렵게 구한 놈이었다. 신은 지 일 년이 다 되어가지만 아직 흠집 하나 없이 반짝거렸다. 리쿠가 제 목숨만큼이나 아끼는 보물 1호기도 하다.

 

반팔 와이셔츠에 맥스 95, 회색 교복 바지. 빡빡이 치넨과 달리 목 근방까지 흐르는 검은 머리.

 

리쿠가 열네 살이 되던 해, 청공사의 스님들이 모여 리쿠의 머리를 밀어버리려 한 적이 있다. 그때 리쿠는 바리캉을 든 손을 물어뜯으며 악착같이 버텼다. 그 소동을 지켜보던 주지 스님이 혀 차는 소리를 냈다. 그냥 내버려 두라는 지시가 떨어지자마자 리쿠를 붙들고 있던 손들이 떨어져 나갔다. 대신 성인이 되면 예외 없이 삭발시키겠다는 엄포가 뒤따랐다. 저런 고집불통이 청공사에 흘러든 것조차 부처의 뜻이라며 주지 스님은 깎다 만 리쿠의 머리칼을 보며 체념 섞인 표정을 지어 보였다.

 

찰랑거리는 검은 머리가 증명한다.

리쿠는 종교에 아무 뜻이 없다.

 

치넨의 매끈한 머리통이 가끔 귀여워 보일 때도 있지만, 그게 제 미래라 생각하면 소름이 돋았다. 윤회니 해탈이니 하는 것들도 전부 관심 밖이었다. 대충 살다 죽으면 그만이다. 다음 생에 고양이로 태어나도 딱히 상관없었다. 다만 이번 생의 목표는 확실했다. 학교 사람들에게 자신이 절간에 처박혀 위패나 깎으며 사는 처지라는 걸 들키지 않는 것. 살갗에 배어버린 지독한 향 냄새나 매일 새벽을 깨우는 목탁 소리 같은 것들.

 

"리쿠. 벌써 학교 가니? 본존불께 아침 인사는 드리고 가야지.“

 

주지 스님의 목소리가 등 뒤를 잡았다. 리쿠는 제 몸에 달라붙은 사찰의 흔적들을 털어내며 얼른 청공사의 가파른 계단을 내려갔다. 누가 봐도 영락없는 히가시야마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의 뒷모습이었다.

 

 

 

***

 

골목 하나를 더 지나자 슬슬 학교 아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리쿠는 얼른 제 와이셔츠 소매에 코를 대고 킁킁거렸다. 고기 누린내보다 지독한 게 절 냄새다. 흙먼지, 풀 비린내, 그리고 마른 나물 냄새.

 

그때 뒤에서 긴 팔 하나가 리쿠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우타하시 나루토였다. 한자로 쓰면 歌橋 鳴門 이렇게 쓴다. 획수도 많고 대각선도 많아 위패에 쓰기에는 최악이다. 그러나 학교에서 부르기엔 더없이 쉬웠다. 히가시야마 고등학교 남학생이라면 누구나 아는 만화 주인공과 이름이 같았으니까. 주간 소년 점프에서 연재 중인 이 만화는 리쿠 또래들 사이에서 종교에 가까운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만화 주인공과 이름이 같은 나루토는 그 이름만큼이나 요란하게 빛났다. 타고난 스타성이 있었고, 서열 정리로 학교라는 생태계를 장악한 정치가이기도 했다.

 

남자들 사이에서 우위를 점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단순하다. 자신의 위압감을 증명하면 된다. 위압감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만만한 대상을 골라 짓밟으면 됐다.

 

"방금 피했냐?“

 

마에다 리쿠가 쉬는 시간마다 교실 구석에서 인간 샌드백이 된 배경에는 그런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었다.

 

여학생 몇 명은 담임에게라도 말해 보라며 참견 섞인 걱정을 건넸다. 남의 일이기에 가능한 조언이었다. 보호자라도 소환되는 날엔 학교 생활은 지금보다 더 우스워질 게 뻔했다. 법복을 입은 빡빡이 스님이 교무실을 들락거리는 장면은 상상만으로도 리쿠를 진저리치게 했다. 차라리 몇 대 맞고 마는 게 낫다는 게 리쿠의 결론이었다. 매점에서 공수해 온 빵과 샌드를 뺏길 때면, 책상이라도 엎어 볼까 생각하기도 했지만...

 

더 근본적인 이유는 담임에게 말해 봐야 소용없다는 거였다. 히가시야마 고등학교 교사들은 학교에 대한 자부심이 유독 강했다. 교토 교육위원회로부터 3년 연속 평화 우수교 표창을 받은 이력은 그들에게 훌륭한 훈장이었다. 어른들은 순진한 걸까 아니면 무책임한 걸까? 성격도 체급도 제각각인 아이들 수백 명을 좁은 교실에 몰아넣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건 오만이다. 폭력이 없었다는 통계는 결국 폭력을 아주 잘 은폐했다는 말과 같았다.

 

하나의 교실에서 약자가 되는 데 거창한 서사 따위는 필요 없다. 그저 운이 나쁘면 그렇게 된다. 2학년 C반에서 리쿠가 이런 위치에 놓일 거라고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리쿠는 잘생긴 외모에 적당히 호감을 사는 인상이었고, 맥스 95를 신었으며, 교복 바지 통도 적당히 수선할 줄 아는 학생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그냥 그렇게 됐다. 정말이지 그건 이유가 끼어들 틈 없는 일이었다.

 

굳이 원인을 따지자면 인간은 본래 성무선악하나 어리석어서 갖은 욕망에 휩쓸리기 쉬운 존재이기 때문일까?

이건 꽤나 불교적인 고찰이다.

 

하지만 이런 상식적인 고찰조차 학교 선생들에게는 통용되지 않았다. 2학년 C반 담임인 모리키미에게는 더더욱 그랬다. 그는 일본의 모든 정수가 교토에서 시작되었다고 굳게 믿는 부류였다. 학생들은 그런 모리키미를 보수 꼰대쯤으로 여겼지만, 정치적 성향이 어떻든 확실한 건 하나였다. 모리키미는 마에다 리쿠라는 남고생 하나 때문에 교토부와 히가시야마 고등학교의 평판에 금이 가는 상황을 결코 원치 않았다.

 

그렇게 나루토의 팔에 어깨가 붙잡힌 채 정문을 지나는데, 웬 애 하나가 멀뚱히 서서 학교 비석만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명찰을 보니 같은 2학년인데 생전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저 정도로 잘 빠진 얼굴이면 리쿠가 모를 리 없는데. 나루토도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그 애의 옆얼굴을 슬쩍 훑었다.

 

"야. 쟤가 낫냐, 내가 낫냐?“

 

나루토가 손등으로 리쿠의 뺨을 툭툭 치며 물었다. 대답할 가치도 없는 질문이었지만, 평소 옳은 말만 하고 살았다면 인생이 이 지경에 이르지도 않았을 거다. 리쿠는 아무 말 없이 손가락을 들어 나루토를 가리켰다.

 

“그렇지, 그렇지.”

 

그제야 목을 옥죄던 끈적한 팔이 떨어져 나갔다. 나루토가 앞서 달려가자, 비석만 보던 아이가 고개를 돌려 리쿠를 보았다. 길게 뻗은 속눈썹과 창백할 만큼 하얀 얼굴, 그리고 날렵한 턱선. 방금의 꼴사나운 모습을 들켰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리쿠는 서둘러 가방끈을 고쳐 쥐고 교문을 통과했다.

 

도쿄에서 전학 온 토쿠노 유우시였다.

 

자리에 앉고 십 분쯤 지났을 때 모리키미 선생은 그 애를 그렇게 소개했다. 뒤이어 긴 설명이 덧붙여진 듯했으나 리쿠의 기억에는 남지 않았다.

 

유우시는 이질적인 존재였다. 리쿠는 한눈에 알아봤다. 도쿄에서 왔다는 말에 아이들은 잠시 눈치를 살피는 듯했지만, 며칠만 지나면 유우시 역시 자신과 다를 바 없는 처지가 될 게 뻔했다. 리쿠는 유우시의 예정된 미래가 안쓰러웠다. 리쿠는 타고나길 단단했다. 웬만큼 밟혀도 와이셔츠만 더러워질 뿐 통증은 오래 가지 않았다. 피부가 원체 어두워 멍자국도 눈에 띄지 않았다. 지금쯤 개울가에서 돌이나 줍고 있을 치넨을 생각하면 차라리 밟히는 이쪽이 낫다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유우시는 달랐다. 보기만 해도 유약했다. 스치기만 해도 금세 멍이 들 것 같았다. 위태로워 보이는 그 모습이 리쿠를 자꾸만 건드렸다.

 

그러나 한 반에 두 명의 약자는 필요 없었던 걸까? 리쿠가 왜 괴롭힘을 당하는지 알 수 없듯, 아이들은 알 수 없는 이유로 유우시에게 호의를 베풀었다. 나루토 패거리는 유우시에게 다가와 점심시간 축구 한 판을 제안했다. 심지어 유우시는 축구마저 잘했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땀을 흘리며 들어오는 아이들은 유우시를 이나모토라 불렀다. 이나모토 준이치는 나루토가 가장 아끼는 축구 선수였으니, 그건 그들 세계에서 최상급의 찬사였다. 또 유우시는 눈치도 빨랐다. 쉬는 시간마다 교실과 복도를 돌아다니며 학교 구석구석을 구경했지만, 생태계 최하층에 있는 리쿠에게만큼은 일절 관심이 없었다.

 

3교시가 끝날 무렵, 나루토의 오른팔인 텐무가 리쿠의 머리 위에 페트병을 올렸다. 직전 한문 시간 숙제를 안 해왔다는 이유로 망신을 당한 터라 화풀이 대상이 필요했다. 그 역할엔 역시 리쿠가 제격이었다. 텐무는 리쿠를 교실 맨 끝에 세워두고는 한신 타이거스 선발 투수라도 된 양 오버스러운 폼을 잡았다. 엉덩이를 뒤로 쭉 빼고 다리를 높게 쳐들며 리쿠의 머리를 겨냥했다.

 

첫 번째 투구. 공은 날카로운 파열음을 내며 리쿠를 비껴가 사물함에 쾅 소리 내며 박혔다. 거대한 소음에 여학생 몇몇이 비명을 질렀다. 무식해서 여자나 제대로 만나겠냐던 한문 선생의 독설이 텐무를 제대로 자극한 모양이었다. 웬만한 자극엔 반응 없던 리쿠조차 몸을 움츠렸다. 리쿠가 평소와 다른 반응을 보이자 텐무는 그제야 흥이 돋았는지 입꼬리를 올렸다.

 

두 번째 투구. 야구공이 리쿠의 허벅지를 정면으로 강타했다. 빡 소리와 함께 공이 튕겨 나갔다. 탄탄한 야구공에 열여덟 남고생의 전력이 실리자 고통은 상상 초월이었다. 리쿠가 그대로 바닥에 무너졌다. 여학생들은 질린 눈으로 텐무를 바라봤고, 남학생들은 제구력 죽이는데! 라며 휘파람을 불어댔다.

 

텐무는 한술 더 떠 앞자리에 앉아 있던 아이에게 공을 주워오라고 턱짓했다. 여기서 또 던지겠다고? 내일 당장 메이저리그에 진출할 게 아니라면 무리한 처사였다. 그 꼴을 보던 나루토는 어이, 적당히 해, 라고 말하면서도 즐거워 죽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텐무는 페트병만 쓰러뜨리면 진짜 그만하겠다며 우쭐거렸다. 제대로 맞으면 페트병이겠지만, 조금만 빗나가도 공은 리쿠의 얼굴에 꽂힌다.

 

이거 진짜 제대로 맞으면 죽겠는데. 리쿠는 웃으며 먼지 묻은 무릎을 털고 일어났다. 딱히 머리 쓸 줄 몰랐다. 그저 운이 좋아 공이 페트병을 맞히거나, 아까처럼 허벅지나 옆구리 같은 데나 때리고 지나가길 바랄 뿐이었다. 얼굴이 망가지는 것보다는 차라리 어디 하나 골절되는 게 나았다. 텐무는 손가락으로 마름모꼴을 만들어 리쿠의 얼굴을 조준하듯 콕 집었다. 그러고는 다시 후욱, 숨을 내뱉으며 기지개를 쫙 폈다. 감이 좋지 않았다. 이쯤 복도를 지나가는 선생님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텐무가 공을 뿌렸다. 전력투구였다.

 

그때. 공보다 빠르게 리쿠의 시야 안으로 하얀 손 하나가 침범했다.

 

"에? 너 뭐야?“

 

토쿠노 유우시였다.

 

저걸 잡는다고? 싶을 정도의 속도였다. 정말 전력이었는지 공을 낚아챈 유우시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유우시가 공을 가볍게 잡아내자 지켜보던 여학생들 사이에서 멋있어! 하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

 

"장난이 좀 심한 것 같아서.“

 

유우시가 야구공을 주머니에 쑤셔 넣으며 말했다. 유우시의 회색 교복 바지 주머니가 볼록하게 솟았다.

 

"이러면 꼭 괴롭히는 것 같잖아.“

 

유우시의 말에 나루토 패거리는 쟤 지금 뭐라는 거야? 하는 표정을 지었고,

 

리쿠는 기분이 제대로 잡쳤다.

 

괴롭힘을 당하는 것과 타인의 입을 통해 괴롭힘당하는 아이라 불리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리쿠는 여태껏 수없이 무릎 꿇려지면서도 신발만큼은 지켜냈다. 뺨을 맞아 고개가 돌아가면서도 기어이 중심을 잡아냈다. 괴롭히는 패거리들만 자리에 없으면 평범한 애들이 슬그머니 다가와 리쿠에게 말을 걸기도 했다. 리쿠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었지만, 그럼에도 무언가 손에 쥐고 있는 듯한 기시감을 주는 아이였으니까. 괴롭힘을 당하고 있었지만 단 한 번도 불쌍해 보인 적 없었으니까. 절에 살지만 절간 아이로 알려지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리쿠는 자리로 돌아가 책상에 걸어둔 가방과 MD 플레이어를 챙겨 교실 밖으로 나섰다. 발가락 끝에 힘을 주고 아무도 없는 운동장을 가로질렀다. 성큼성큼 걸었다. 남은 수업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그저 얼른 이 학교 밖으로 벗어나고 싶을 뿐이었다.

 

 

 

***

 

리쿠는 평상에 걸터앉아 깊은 생각에 빠졌다.

 

지금이라도 치넨 옆에 앉아 초발심자경문이나 천수경을 미친듯이 외우면 몇 살쯤 사미가 될 수 있을까. 청공사 스님 중 그 누구도 리쿠에게 학교에 가라 등 떠밀지 않았으니, 지금이라도 도를 닦겠다고 하면 아마 두 팔 벌려 환영할 터였다.

 

불교에는 苦, 즉 인생은 괴로움이라는 가르침이 있다. 생각보다 불교는 맞는 말을 자주 하는 종교이다. 인생은 정말이지 고통의 연속이었으니까.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는데 옆으로 주지 스님이 다가왔다. 리쿠는 얼른 손바닥으로 허벅지를 가렸다. 야구공에 강타당한 자리가 벌겋게 부풀어 올라 피멍이 들고 있었다. 반바지로는 차마 가릴 수 없는 위치였다.

 

“오늘은 학교에 안 가냐?”

“개교기념일이에요.”

“그럼 가서 울력이라도 돕지 않고. 또 고양이 구경이나 하고 있었구나.”

“생각할 게 좀 있어서요.”

 

리쿠의 말에 주지 스님이 웃었다.

 

“생각? 네 녀석이 무슨 생각을 그리 하길래.”

“...왜 태어났을까 그런 생각요.”

 

방금 건 리쿠가 느끼기에도 지나치게 감상적이었다. 스스로 뱉고도 아차 싶어 입가를 틀어막았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주지 스님이 리쿠의 옆자리로 몸을 붙여 앉았다. 해묵은 나무 평상이 체중을 이기지 못하고 삐그덕거렸다.

 

“리쿠야.”

평온한 목소리였다.

“네....”

“제 의지로 태어난 사람은 없다. 다 저마다 그래야만 할 이유가 있어 세상에 나온 게지.”

잔소리 시작이다. 리쿠는 대답 대신 고개를 떨구고 눈으로 발치에서 길 잃은 개미 한 마리를 쫓기 시작했다. 그 순간이었다.

 

“네가 청공사에 흘러든 것도, 수려한 얼굴로 태어난 것도, 오늘처럼 사찰 뒤에 있는 길고양이를 살피는 마음도, 세상에 나온 것과 나오지 못한 것 모두, 저마다의 이유가 있는 법이다.”

 

“태어나지 못한 것도요?”

 

리쿠의 물음에 주지 스님은 대답 대신 마당 한쪽으로 바라보았다. 그곳엔 이끼 낀 돌지장보살들이 질서정연하게 열을 지어 서 있었다.

 

“그렇고말고. 빛을 보지 못한 채 누그러지는 인연이 얼마나 많더냐. 제 몫보다 과하게 머물다 가는 이가 있는가 하면, 제 몫의 반도 채우지 못하고 서둘러 돌아가는 이도 있는 것이지.”

 

돌지장보살의 머리 위로 오후의 나른한 햇살이 부서졌다. 리쿠는 그 무거운 침묵이 싫어 애먼 개미를 발끝으로 툭 건드렸다.

 

“살다 보면 말이다. 왜 그 많은 사람 중 하필 나일까, 억울해서 잠 못 이루는 날이 올 게다.”

 

리쿠는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여전히 머리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소리였지만. 그래도 그냥 들었다. 주지 스님은 입을 다문 리쿠를 잠시 응시하다 말을 이었다.

 

“언젠가 너에게 그런 순간이 온다면 어떡할 테냐?”

“…그냥 끝까지 억울해할 것 같은데요.”

 

리쿠의 군더더기 없는 대답에 스님이 껄껄거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우리 리쿠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겠지.

 

“하지만 리쿠야.”

“.......”

“그 모든 걸 우리는 필연이라 부른단다. 네가 알지도 못하는 아주 먼 곳에서부터, 오직 너만을 향해 달려오고 있던 운명 같은 것 말이다.”

 

필연.

 

리쿠는 낯선 단어를 입안에서 가만히 굴려 보았다. 정체 모를 곳에서부터 나를 찾아 달려오는 운명이라. 본래라면 소름 끼쳐야 마땅할 소리인데 이상하게 마음 한구석이 가라앉았다. 지금까지 내게 닥친 이름 모를 불행들이 적어도 내 잘못 때문에 벌어진 일은 아니라는 면죄부를 받는 것 같아서.

 

주지 스님이 리쿠의 머리를 투박하게 쓰다듬었다.

 

“먼저 가는 것도 인연이고, 남겨지는 것도 다 인연인 법이다. 먼저 떠난 인연이 남겨진 이를 지키기도 하고, 남겨진 이가 떠난 이의 몫까지 대신 살아가기도 하는 게 삶이지.”

 

세상은 그렇게 돌고 도는 것 아니겠니.

 

주지 스님이 몸을 일으키자, 가라앉아 있던 낡은 평상이 서서히 솟아올랐다.

 

“허벅지 멍에는 얼른 약이나 발라라.”

 

금방이라도 단골 고양이 나비가 나타나 리쿠의 종아리에 보드라운 볼살을 비빌 것 같은 지독하고도 고요한 오후였다.

 

 

 

***

 

사흘간 학교를 나가지 않았다. 절방에 처박혀 지겨운 나물 냄새만 맡다 보니, 삭발한 스님으로 늙어 죽느니 차라리 학교에서 샌드백으로 사는 게 낫겠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한 반에 두 명의 약자는 필요치 않다 하지 않았나. 리쿠가 자리를 비운 사이 2학년 C반의 타깃은 다시 공석이 되었고, 그 자리는 자연스럽게 유우시에게 돌아갔다. 유우시 또한 자신과 다를 바 없는 처지가 될 거라던 예감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교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비릿한 우유 냄새가 훅 끼쳐왔다. 남자애들이 유우시의 머리에 다 마신 우유 곽을 던지고 있었다. 내용물은 비었을지 몰라도 곽 틈새로 허연 우유 방울이 비어져 나와 유우시의 머리칼을 적셨다. 리쿠는 그 모습을 보고도 못 본 척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그런 리쿠를 발견한 놈들이 기다렸다는 듯 비아냥거렸다.

 

“이번에는 리쿠 상이 유우시를 좀 도와줘야 하는 거 아냐?”

 

리쿠는 대꾸 대신 노트를 펼쳤다. 그러고는 읊조리며 글자를 적어 내려갔다. 모든 일은 순리대로 흐른다. 모든 일은 순리대로 흐른다. 모든 일은 순리대로 흐른다. 그렇다면 리쿠가 이지메를 당한 것도, 유우시가 도쿄에서 교토까지 흘러 들어온 것도, 지금 리쿠 대신 우유 곽을 맞는 것도 모두 정해진 순리라는 뜻이다. 주지 스님이 무엇을 그리 어렵게 은유했는지는 몰라도, 열여덟 리쿠가 할 수 있는 생각의 한계는 딱 거기까지였다.

 

문득 리쿠는 노트 위에 적던 문장을 거칠게 그어버렸다. 검은 잉크에 짓눌려 글씨가 형체를 잃었다. 만약 이 모든 소란이 아주 오래전부터 겹겹이 쌓여온 필연이라면. 지금 이 선택 또한 먼 미래를 뒤바꿀 씨앗이 될 수도 있다는 거 아닌가. 그 결실이 수십 년 후일지, 혹은 리쿠가 먼지가 된 수백 년 후일지는 알 수 없지만. 주지 스님의 말이 맞다면, 우유 비린내가 진동하는 이 순간이 고리를 뒤트는 시작점이 될 수도 있다는 뜻 아닌가.

 

리쿠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 유우시를 둘러싼 남자애 둘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그러고는 망설임 없이 옆에 있던 의자를 들어 올려 둘의 머리를 후려쳤다. 철제 프레임 쪽으로 맞았다면 그 자리에서 즉사했을 힘이었다. 다행히 나무 좌석 쪽이었다. 그럼에도 둘은 반항 한 번 못 해보고 그대로 고꾸라져 병원으로 실려 가야 했다. 리쿠의 뺨 어귀에 붉은 피 몇 방울이 튀었다. 난리난 아이들 사이로 유우시는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 일로 리쿠에게 생긴 변화는 다음과 같다.

 

(1) 새벽 예불 전후로 법당 바닥 걸레질, 그리고 매일 저녁 관세음보살의 자비를 구하는 참회문 필사가 한 달간의 일과가 되었다.

(2) 학교에서는 한 달간의 출석 정지 처분이 내려졌다.

(3) 대신 교내외에서 80시간의 봉사 활동을 채워야 했다.

 

놀랍게도 이외에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심지어 출석 정지는 벌이라기보다 포상에 가까웠다. 나루토 패거리의 보복을 내심 각오하기도 했으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리쿠의 눈이 제대로 뒤집힌 것을 목격한 아이들은 징계가 확정되는 날까지 그의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머리통이 터진 아이들의 부모들은 금방이라도 교무실을 부술 듯 씩씩거리다, 복도와 운동장 CCTV 영상을 확인하고는 입을 꾹 다물었다. 화면 속에는 텐무가 리쿠를 향해 야구공을 풀스윙으로 내리꽂는 장면이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주지 스님은 그 영상을 가만히 지켜보더니 모리키미 선생님을 향해 깊게 합장했다. 당황한 모리키미 선생님 또한 엉겁결에 마주 합장하며 고개를 숙였다.

 

아, 하나 더 있었다.

리쿠에게 생긴 결정적인 변화.

 

(4) 히가시야마 고등학교 전교생이 리쿠가 절에 사는 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여튼, 그 정도의 소란스러운 변화가 있었다.

 

 

 

***

 

"너 여기서 뭐 해?“

 

리쿠는 범종 앞에서 하얀 손을 모으고 중얼거리는 유우시를 보며 물었다. 오늘은 80시간의 사회봉사 중 겨우 20시간째를 채우는 날이었다. 화장실이나 강당 청소 같은 교내 봉사라는 선택지도 있었지만, 리쿠는 기를 쓰고 교외 봉사를 택했다. 학교로 돌아가 시시콜콜한 소동에 휘말리는 것보다야 몸이 고된 게 나았다.

 

다행히 협력 기관 중에는 청공사의 말사인 수정사水精寺가 포함되어 있었다. 주지 스님이 말만 잘 해준다면 열 시간 정도는 슬쩍 가라로 빼주지 않을까 기대했다. 하지만 수정사 스님들은 단단히 지령이라도 받은 모양인지, 리쿠를 온종일 지독하게 부려 먹고 있었다. 방금까지도 우물에서 정자까지 지게를 지고 여덟 번을 왕복했다. 나무꾼도 아니고 이게 도대체 무슨 꼴인지. 그렇게 비 오듯 흐르는 땀을 나시 소매로 벅벅 닦아내고 있는데, 낯익은 뒤태가 리쿠의 시야에 걸려들었다.

 

조용히 눈을 감고 있던 유우시는 리쿠를 빤히 바라보았다. 당황한 리쿠와 달리 이곳에서 리쿠를 마주친 게 별로 놀랍지 않은 기색이었다.

 

“기도 중이잖아.”

“그러니까, 학교에 있을 시간에 왜 여기서 이러고 있냐고.”

“봉사하러 왔어.”

“네가 무슨 봉사?”

유우시는 대답 대신 시선을 낮췄다. 한참 뒤에야 돌아온 대답은 무미건조했다.

“…우타하시 나루토랑 싸웠어.”

“우타하시랑?”

 

정자에 걸터앉아 있던 리쿠는 벌떡 일어나 유우시의 몸 구석구석을 살폈다. 어디 부러진 덴 없는 것 같은데. 나루토가 아무리 정치질로 서열을 잡았다 해도 주먹까지 뒤처지는 놈은 아니었다. 리쿠가 보기에 유우시는 나루토의 정타 한 방이면 그대로 나가떨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몰골이었다. 다행히 유우시는 생채기 하나 없이 지나치게 말끔했다.

 

"안 다친 거야?"

"멀쩡해. 안 다쳤어…. 그러니까 이것 좀 치워줄래?“

 

제 배 근처를 더듬으며 상태를 살피는 리쿠의 손길에 유우시가 곤란한 듯 말했다. 리쿠는 그제야 머쓱하게 손을 뗐다. 그러니까 유우시의 말을 요약하자면 단순했다. 자신이 우타하시 나루토를 고꾸라뜨렸다는 소리였다. 순간 허언증인가 싶었으나 전력으로 날아오던 야구공을 낚아채던 그 순발력을 떠올리니 아주 거짓말 같지만은 않았다.

 

"그래서, 왜 그랬는데?“

 

리쿠의 물음에 유우시는 입을 닫았다. 발치에 떨어진 돌멩이를 만지작거리다 저 멀리 툭 던졌다. 왜 때렸냐니까? 재차 묻자 유우시가 아주 낮게 웅얼거렸다.

 

"들으면 기분 나빠할 것 같아...."

"안 나빠해. 말해봐.“

 

유우시는 한참이나 리쿠의 눈을 피하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절간에 처박혀서 위패만 깎고 있으면 명이 짧아진대. 죽은 사람들 이름만 만지다 보면 팔자도 그렇게 된다고.”

 

그 말을 뱉는 유우시의 눈꺼풀이 가늘게 떨렸다. 정작 듣는 리쿠는 덤덤했다.

 

“그게 끝이야?”

“응.”

“야, 뭘 그런 걸로 애를 패고 그래. 너도 은근 성깔 있다?”

 

난 또 뭐라고. 리쿠는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어차피 리쿠가 절밥 먹고 사는 건 전교생이 다 알게 된 사실이었다. 거기서 조금 더 나간 소리일 뿐이었다. 리쿠가 직접 들었어도 콧방귀나 뀌고 넘겼을 거다. 고작 그런 말로 주먹질까지 할 건 또 뭐람. 전학생에게 쏟아지는 우유 곽을 보고 의자를 휘둘렀던 리쿠가 할 말은 아니었지만, 그때 리쿠는 정말이지 스스로도 의아할 만큼 눈앞이 깜깜해졌으니까.

 

“일찍 죽으면 일찍 죽는 거지, 뭐.”

리쿠가 툭 내뱉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해?”

“응?”

“정말 리쿠는 죽음이 두렵지 않아?”

갑자기 대화가 철학적으로 빠지고 있었다.

 

“에에. 그냥 하는 말이잖아. 쪽팔려 죽겠다, 졸려 죽겠다, 그런 거랑 비슷한 말이야.”

 

“그렇다고 해도 죽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어. 다들 말로만 그러는 거지.”

 

그 말을 하고 유우시는 다시 눈을 감았다. 마치 영적인 의식을 치르는 사람 같았다. 안 그래도 긴 속눈썹이 눈을 감으니 도드라져 보였다.

 

리쿠도 안다. 죽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다. 인류는 아주 오래전부터 그래왔다. 진시황은 불로초를 찾으러 평생 신하들을 닦달했고, 이집트인들은 육신을 보존하려 장기까지 다 꺼내 미라를 만들었다. 어떻게든 지속되고 싶어 하는 본능. 대체 이 세상에 뭘 두고 왔길래 그리 떠나지 못하는 걸까.

 

리쿠라고 딱히 죽고 싶은 건 아니다.

그저 죽어도 상관없다는 뜻이다.

 

이 세상에 남겨둔 게 별로 없어서 그렇다. 가족도, 제대로 된 친구도 없고, 기껏해야 어렵게 구한 운동화 한 켤레 정도다. 세상이 내일 당장 끝나도 상관없다고 생각한 지는 꽤 되었다. 죽어본 적 없는 열여덟의 허세일 수도 있다. 그러나 리쿠는 자신의 이번 생이 처음이 아니라고 확신했으므로. 결국 죽음 역시 언젠가 경험해 봤다는 느낌이 들었다.

 

다만 다음 생은 없거나 혹은 있더라도 제발 인간이 아니길 바랄 뿐이었다.

 

눈을 감은 유우시 옆에서 함께 눈을 감아보았다. 보이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미래를 그려보려 해도 잡히는 장면이 없었다. 꿈이나 기대되는 내일, 혹은 범종 앞에서 빌고 싶은 소원 같은 것들. 유우시는 그런 게 있는지 꽤 오래 두 눈을 꼭 감고 있었다.

 

무슨 소원 빌었어? 먼저 눈을 뜬 리쿠가 물었다. 유우시는 대답 대신 작은 돌멩이를 집어 저만치 던졌다. 따분한 봉사 시간에 말동무가 생겨 신난 리쿠가 장난기를 섞어 말했다.

 

“유우시, 이 돌멩이도 전생에는 사람이었을지 몰라. 함부로 던지고 그러면 안 돼. 특히 사찰에 있는 돌은 더더욱.”

 

“진짜?”

 

유우시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물었다. 은근히 놀리는 맛이 있었다. 어릴 때부터 지겹도록 들어온 강경 공부가 이럴 때 써먹으라고 있었나 보다. 리쿠는 뭔가를 더 많이 알고 있다는 기분에 신이 나서 설명을 보탰다.

 

“진짜라니까. 불교에는 윤회라는 게 있거든. 죽으면 자기가 지은 업보에 따라 여섯 가지 세상 중 하나로 다시 태어나는 거야. 너도 조심 안 하면 다음 생엔 저런 돌멩이로 태어날걸?”

 

유우시는 꽤 진지한 얼굴로 경청했다.

 

“죽고 나서 얼마나 있다가 다시 태어나는데?”

 

“음... 보통 사십구재라고 하잖아. 죽고 나서 딱 49일 동안 어디로 갈지 심사를 받는 거야. 그 기간을 중음이라고 하는데, 그때 판결이 나는 거지.”

 

리쿠는 유우시의 콧등을 툭 쳤다. 잘생긴 이케멘으로 태어날지, 아니면 방금 네가 던진 돌멩이로 태어날지 같은 거. 리쿠는 이케멘이라는 대목에서 보란 듯이 검지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유우시는 궁금한 게 많았다.

어떻게 해야 인간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는지. 착하게 살면 전생을 기억하는 게 가능한지. 일본인은 다시 태어나도 꼭 일본인이어야 하는지. 혹은 너무 많이 환생해서 더는 태어날 몸이 없는 사람도 있는지 같은 것들. 하지만 유우시는 더 묻지 않고 리쿠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여기서 더 물어봐야 리쿠는 대답하지 못할 것이다.

 

마에다 리쿠가 아는 밑천은 딱 여기까지니까.

 

멀리서 묘진 스님이 리쿠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알겠어요! 금방 가요!“

 

리쿠가 씩 웃으며 대답했다. 유우시의 어깨를 장난스레 툭툭 치고는 대웅전 쪽으로 잽싸게 뛰어가는 뒷모습이 가벼웠다.

 

유우시는 리쿠가 떠나간 자리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

 

수정사. 이름 그대로 물 수에 맑을 정을 써서 맑은 물이 흐르는 절이라는 뜻이다. 8세기 무렵 헤이안 시대에 창건된 이 사찰은 교토 내에서도 규모가 그리 큰 편은 아니지만, 북쪽 산세가 완만하고 앞으로는 맑은 계곡물이 흘러 배산임수의 명당이었다.

 

그리고 유우시가 직접 겪어본 교토는 과거와 미래가 기묘하게 공존하는 곳이었다. 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켜켜이 쌓인 붉은 토리이 행렬과, 그 아래 낮은 처마 밑에서 소박하게 팔리고 있는 오마모리들. 대물림된 가업을 묵묵히 지키는 굽은 허리의 노인들과, 그들이 빚어낸 전통을 신기한 듯 구경하며 지나가는 교복 입은 학생들. 794년 헤이안쿄가 세워진 이래 천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일본의 중심을 지켰던 이 도시는,

ㅡ 마치 세상의 모든 인연과 연줄이 거미줄처럼 얽힌 채 그대로 멈춰버린 거대한 태엽 시계 같다.

 

지심귀명례. 나무.

그리고 리쿠는 이 정체된 도시의 공기와 잘 어울리는 소년이었다.

지심귀명례. 나무.

낡은 사찰의 단청색을 닮은 눈동자를 가지고 있다.

지심귀명례. 나무.

유우시는 두 시간을 내내 기도했지만 다시 몸을 굽혔다.

지심귀명례. 나무.

지극한 마음으로 목숨을 바쳐 절했다.

지심귀명례. 나무.

 

 

 

[2025 개정판] 고등학교 현대 사회와 안전 윤리

단원 3. 공동체의 해체와 무동기 범죄의 사회적 파장

"증오 범죄의 비극: 2006년 교토 히가시야마고 묻지마 살인 사건"

 

21세기 초 일본 사회를 뒤흔든 대표적인 무차별 살상 사건으로, 당시 히가시야마 고교 재학생이었던 마에다 군이 희생되었다.

 

본 사건은 교토 안전 구역이라 불리던 히가시야마 지구의 신화를 무너뜨렸으며, 이후 일본 전역의 학교 정문 CCTV 설치 의무화 및 지역 밀착형 방범 체계(패트롤) 구축의 결정적인 도화선이 되었다. 희생된 마에다 군은 평소 품행이 바르고 인근 사찰의 일을 돕던 성실한 학생으로 알려져 지역 사회에 더욱 큰 슬픔을 안겼다.

 

 

지심귀명례. 나무.

To Be Continued... in the Collection Book
해당 작품의 2화는 추후 발매될 소장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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